BLAH BLAH(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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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
꿈보다 해몽이란 말이 있다. 발리에 오기 전 퇴사를 했다. 정확히 말하면 퇴사를 하고 발리에 왔다. 물론 퇴사 직후엔 베트남 여행을 했다. 베트남 살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아무튼 그랬다. 퇴사란 나에겐 실패라는 의미다. 말이 좋아 퇴사지, 결국 적응 또는 남들처럼 버티지 못해 그만둔 것이다. 내 인생은 언제나 그랬다. 학교도 중퇴, 회사도 퇴사. 뭐 하나 끝까지 해본 적이 없다. 그런 면에서 10년, 20년, 30년 근속이란 정말 레전드다. 또 하나의 허상이 여기 또 있다. 노매드. 말이 좋아 노매드이지 정작은 백수다. 돈? 회사 다니면 열심히 일하면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통장에 꽂혔다. 노매드? 허상이다. 아무리 해봐라 매달 돈이 꽃이나. - 디지털 노매드를 꿈꾸는 백수
2023.06.21 -
발리
이랬거나 저랬거나 한 달을 살던 두 달을 살던 아니면 일년을 살던, 퇴사를 하고 오던 그냥 오던, 그곳이 짱구이던, 울루와뚜이던, 우붓이던, 서핑을 하던 요가를 하던, 비건이 되건 말건 그냥 와서 하면 되는 것이 발리 아닌가. 뭐가 그리 복잡한 것인지. 문득 발리살이라는 주제로 살펴보니 참 세상 힘들게 산다. 일단 와서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답은 나오게 된다. 여행은 공부하는 시험과목이 아니다. 정답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 그냥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누군가를 따라 할 필요도, 누군가의 정보를 신뢰할 필요도 없다. 그냥 오면 된다. - 발리에서
2023.06.19 -
무기력
발리에만 오면 매일같이 신나고 즐겁게 여행 이야기를 쓸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발리에 와 보니 하루에 한 번은커녕 아무런 글도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머릿속으로만 글을 쓰고 있다. 어느 순간 무기력해진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벌써 2주가 넘어가고 있지만 바다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호텔에서 호텔로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반복하고 있다. 결국 여행지에 일거리를 가지고 온 내가 잘못이기도 하지만 그 사이 너무나도 변해버린 발리의 모습에 적지 않는 실망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그럼에도 이 섬의 푸릇함과 초록함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뜨거운 태양과 담배 냄새, 아름다운 선셋도 여전하다. 바뀐 것이 있다면 아마도 나 자신이 아닐지. - Jl. Benesari
2023.06.10 -
마무리
이것저것 벌여 놓은 까닭에 정신없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지만 제대로 마무리 지은 것이 별로 없다. 용량을 압박할 정도로 찍어놓은 사진들도 나중에 나중에, 홈페이지 수정도 나중에 나중에, 당장 꺼야 하는 급한 불만 보다 보니 큰 것을 놓치고 있는 기분이다. 중요한 것은 발리. 취재 준비도 해야 하는데 정작 시작도 못하고 있다. 하다 보면 하나씩 정리되고 마무리되겠지만 쉽지 않다. 끝내야 할 것들이 밀리기 시작하니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다. 큰 일이다. - 당이 땡긴다
2023.04.05 -
무이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야외 테라스 자리와 강력한 에어컨 바람이 틀어진 실내 조식당의 경계 부분에 자리를 잡았다. 반쯤 열려있는 문 틈으로 인의적인 냉풍이 느껴진다. 마치 추운 겨울날 야외 온천에서 반신욕을 하는 기분이랄까. 분명 쿨링다운 해주는 고마운 바람이지만 태생이 다르다.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무이네는 이렇듯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크고 작은 리조트들을 통해 자연적인 바다와 바람을 만끽할 수 있어 행복한 곳이다. 맛있는 열대과일을 먹기 좋게 잘라놓아 밥 대신 흡입하고 있다. 조식당이 문을 닫을 때까지 말이다. 아직 야외 테라스에 앉아 진한 베트남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는 현지인들이 남아있으니 당분간은 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다. - 바람 부는 무이네에서
2023.03.20 -
마법
그동안의 지친 몸과 마음이 한순간에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짜디짠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나와 미지근해진 음료를 마시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틀어놓고 있자니 마치 마법처럼 순간이동을 한 기분이 든다. 발리에서 보낸 수많은 날들 중 하루를 보내는 기분. 이걸로 충분하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지만 뜨겁지 않아서, 바람이 불어서 좋다. 갈아입을 옷가지도 없어 대충 마를때까지 책을 읽으며 보낸 시간. 군데군데 남은 모래의 잔재들,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의 염도, 해변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까지. 오늘도 바다는 모두에게 마법을 부리고 있다. 부산에 온 뒤 처음으로 바다를 가까이에 두고 있다는 것이 행복해졌다. - 마법의 바다
2022.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