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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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혀 있는 선셋 바 설명 하나로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해변 쪽에 위치하고 있는 레스토랑 겸 바로 바다 풍경을 감상하면서 느긋하게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이름처럼 매일 오후 해 질 무렵 가장 멋진 선셋을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로 사랑받고 있다. 피자와 같은 가벼운 식사 메뉴와 고운 빛의 칵테일을 즐기며 멋진 풍경을 누려보자.’ 그런데 도무지 어디인지 모르겠다. 똑같은 상호의 비치바는 동남아시아 전역에 있는데 어디였을까? 정확한 날짜도 알 수가 없다. 선셋이 아름답다는 것으로 유추해보자면 코타키나발루나 보라카이가 아닐까? 그런데 느긋한 여유를 느낄 수 있다고 한 걸 보니 유명 관광지는 아닌 것 같다. 어딜까. 미치겠다. 혹시 시판돈인가. 두줄 가량 되는 단서를 가지고 추리를..
2020.12.28 -
쉼표
2015년부터 시작된 라오스 취재, ‘저스트 고 동남아시아’ 편 라오스 업데이트를 마치고 또다시 일 년, 비로소 라오스만을 담은 ‘저스트 고 라오스’가 출간을 하게 되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오기 마련. 출간될 책을 보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자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라오스는 다른 여행지와는 달리 나에게 작은 쉼표가 되어 주었다. 조금은 느리게, 조금은 천천히… 또한 나는 선풍기조차 바람의 힘으로 돌아가던 라오스에서 오랜 시간 당연히 누리고 있었던 행복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라오스, 그 소박함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아름다움을 전부 소개할 수는 없었지만 전달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라오스 여행을 준비하는 여행자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출간..
2020.12.18 -
길을 걷다가
썽태우가 멈춰 섰다. 출발하기 전부터 불안 불안하더니만 결국 말썽을 부린 것이다. 라오스 음악까지 틀어놓고 신나게 드라이브를 즐기던 그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쪽으로 기우는 차량. 깜짝 놀라 길 한쪽에 썽태우를 세우고 사태를 파악해본다. 오른쪽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장비 몇 개를 챙겨 능숙한 솜씨로 수리 모드에 돌입한 현지 친구를 뒤로하고 블루 라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가는 길은 하나,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마을 풍경도 구경해보기로 했다.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몰랐는데 붉은 흙길이다. 딱딱한 아스팔트나 보도블록만 걷다가 흙길을 걸으니 걸을 때마다 스펀지처럼 푹푹 꺼지는 감촉이 나쁘지만은 않다. 게다가 흙길 중간중간 소박하게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고, 흙..
2020.12.18 -
동행
라오스 여행은 어색한 동행의 연속이다. 버스를 타든, 미니밴을 타든, 뚝뚝을 타든, 보트를 타든 간에 말이다. 때로는 침묵 속에서 몇 시간을 함께하기도 하고, 때로는 절친한 친구라도 된 것 마냥 수다스러워지기도 한다. 어떤 날은 4명, 어떤 날은 6명, 출발하는 차량 크기에 따라 어떤 날은 무리가 되기도 한다. 혼자 하는 여행이지만 온전히 혼자인 시간은 밥을 먹는 시간과 잠을 자는 시간 정도일 뿐이다. 어딜 가던 한데 모아 출발하려는 기사들 때문에 혼자여서 외롭거나 두려워할 일이 없다. 또다시 누군가를 만날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라오스의 밤은 언제나 설렌다. – Are you with someone? 2016년 6월 16일
2020.12.17 -
붓다파크
출발하려는 버스를 잡아탄 까닭에 잔돈도 준비를 못한 채 버스에 올랐다. 큰돈은 아니지만 버스에 타고 있던 아주머니들의 도움(5만 킵 짜리 지폐가 버스 반 바퀴를 돔)으로 요금을 냈다. 반나절 남짓 붓다파크를 구경하고 비엔티엔으로 돌아가는 길, 출발할 때 현지인들로 가득했던 버스가 돌아갈 때는 나를 포함한 몇몇 여행자들이 전부다. 혼자가 아니어서 천만다행. 빵빵한 에어컨과 적당한 덜컹거림, 땀으로 젖었던 티셔츠가 빠르게 말라간다. 노곤함과 나른함이 한대 엉켜 결국 잠이 들었다. – 비엔티엔 14번 버스에서 2016년 6월 1일
2020.12.17 -
오아시스
머릿속에 분명히 지우개가 있나 보다. 불과 하루 전에 있었던 일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말이다. 병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요즘 들어 조금씩 심각해지고 있다. 아무튼 반납해야 할 자전거를 깜빡하고 방갈로 앞에 모셔둔 채 날이 밝았다. 뭐~ 자동 연장이다. 전날 밤늦게까지 미친 듯 맥주를 마신 탓에 체크아웃 시간을 넘긴 채 오후에서야 일어났다. 결국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하루 종일 멈추지 않고 머리 위에서 돌아가는 선풍기가 갑작스레 멈췄다. 정전인가? 방갈로가 점점 더워진다. 샤워를 해봐도, 부채질을 해봐도 소용이 없다. 참다못해 자전거를 끌고 나와 무작정 달렸다. 페달을 힘차게 밟을 때마다 바람이 불어와 조금씩 시원해진다. 한참을 그렇게 미친 듯 달리다 찾은 오아시스. 이제야 살 것 같다. – 돈콘 ..
2020.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