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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그동안의 지친 몸과 마음이 한순간에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짜디짠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나와 미지근해진 음료를 마시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틀어놓고 있자니 마치 마법처럼 순간이동을 한 기분이 든다. 발리에서 보낸 수많은 날들 중 하루를 보내는 기분. 이걸로 충분하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지만 뜨겁지 않아서, 바람이 불어서 좋다. 갈아입을 옷가지도 없어 대충 마를때까지 책을 읽으며 보낸 시간. 군데군데 남은 모래의 잔재들,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의 염도, 해변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까지. 오늘도 바다는 모두에게 마법을 부리고 있다. 부산에 온 뒤 처음으로 바다를 가까이에 두고 있다는 것이 행복해졌다. - 마법의 바다
2022.07.11 -
밤부쉘
하얼빈 병맥주에 바지락 볶음을 주문해 먹고 마시다 보니 동남아시아의 어느 날이 불현듯 떠올랐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거슬러 올라 떠올려보니 그곳은 다름 아닌 동말레이시아의 쿠칭에서 먹었던 톱스폿이라는 이름의 해산물 코너였다. 건물 옥상에 마련된 해산물 코너에서 밤부쉘 요리에 타이거 맥주를 시켜놓고 한낮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며 먹고 마시던 그 순간. 비록 코로나19로 여행을 떠날 수는 없지만 간단히 리춘 식당에서 그날의 여행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니... 여행의 기억보다 더 강렬했던 그날의 맛. - 그저 백종원님에게 감사할 따름.
2022.06.29 -
C A N
캔 캔 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이른 새벽 바다에서 첫 파도를 타고 출근을 하던 로컬 서퍼들의 삶을 가까이서 봐온 나로서는 삶의 터전을 바꾸기 전까지 파도를 타고 출근을 하거나 퇴근을 하고 파도를 타는 삶은 그저 복 받은 사람들의 삶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어쩌면 올해는 나도 그들처럼 파도를 타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매일매일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마음만 먹는다면, 일주일에 한 번 바다에서 파도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휴일을 보낼 수 있다. 부산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난 뒤 쉬는 날에는 가까운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필요한 건 서핑보드다. 친한 동생 스튜디오에 맡겨둔 서핑보드들을 이고 지고 와야 한다. 출퇴근 용으로 구입한 중고차 안에..
2022.05.10 -
초보여행자
부산에서 걷고 부산에서 먹고 부산에서 잔다.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시절에 한번 다녀왔던 기억이 전부인 부산이다. 먼 타국으로는 뻔질나게 여행을 다니지만 정작 국내 여행의 경험은 별로 없다. 부산에 왔지만 부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한심할 따름. 가장 익숙한 백화점에 들러서 밥을 먹고 마트에서 간단한 도시락을 사다 호텔 방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마무리를 한다. 멋진 뷰를 기대했지만 프로모션으로 예약한 객실의 뷰는 그냥 도로와 건물이 전부. 건물 틈 사이 영도대교가 살짝 보이지만 별 감흥은 없다. 재미없는 여행이 틀림없지만 어쩔 수 있으랴, 처음부터 완벽한 여행은 없으니 말이다. 시간이 나는 대로 틈틈이 부산을 둘러봐야겠다. - 이곳을 떠나는 그날까지, 아주 천천히.
2022.05.10 -
다이어트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체중, 아니 살이 찌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변화들이 있었다.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과는 항상 그대로였다. 내 인생 최고의 무게 기록을 연신 경신하던 지난해. 채용을 앞두고 받았던 신체검사에서 깜짝 놀랄 수치들을 받아 들고 본격적인 체중과의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그동안은 세월에 따른 아주 자연스러운 변화라며 그냥 그렇게 넘기곤 했었다. 그렇게 시작된 반 강제적 노동 다이어트, 결과는 드라마틱했다. 반복적이고 체력 소모가 큰 노동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한 체중이 노동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빠르게 감소했다. 육체적으로 고된 일을 시작한 뒤 한 달만에 무려 10kg가 빠졌다. 과거 날렵하고 말랐던 20대의 몸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은 매년 여름이 다가올수록 ..
2022.05.01 -
집중호우
간밤에 내린 비는 엄청났다. 강수량도 강수량이거니와 타프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ASMR이 아닌 9.1 채널 우퍼가 달린 스피커를 틀어놓았나 싶을 정도로 웅장했다. 어찌나 세차게 내리던지 행여나 비가 세거나 옹벽이 무너져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닐지 혼자서 별의별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고 깨기를 반복했다. 간간이 들려오는 천둥, 번개의 굉음이 더해져 완벽한 사운드를 만들고 있었다. 빗소리가 주는 낭만보다는 두려움이 조금 더 컸던 밤이었다. 새벽을 여는 새소리에 일어나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고 믹스 커피를 마시는 지금, 다행히 빗줄기는 약해졌다. 내리는 비에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시원하게 샤워를 한 것 같다. 오랜만에 나 역시 캠핑 의자에 앉아 글도 끄적이고 책도 읽으며 나만의 시간에 집중한다. 비가 내려..
2022.04.26 -
자갈치 시장_JAGALCHI MARKET
전날 8시가 조금 넘어서 잠이 들었다. 평상시 취침시간보다 일찍 잠이 든 이유는 오랜만에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술을 마신 이유는 다음날이 휴일인 이유도 있겠지만 요 며칠 더워진 날씨에 치맥에 대한 갈증이 켜졌기 때문이다. 직장 동생이 자주 시켜먹는다고 하는 국제 통닭을 남포동에서 우연히 발견한 순간부터, 시원한 생맥주로 목을 축이고 본격적으로 치맥을 먹은 게 오후 4시 무렵이었다. 시원하고 청량한 생맥주는 좁은 식도를 따라 부럽고 빠르게 넘어갔다. 주문한 통닭은 어찌나 양이 많은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아 그만큼 생맥주가 추가되는 분위기. 마실만큼 마시고 먹을 만큼 먹은 뒤 소화를 시킬 켬 숙소까지 걸어와 숙소에서 제공하는 생맥주를 또 마시기 시작했다. 취기가 오를 만큼 마신 뒤 방으로 돌아와..
2022.04.13 -
발리
365일 서핑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가만히 호텔 방에서 쉴 수 있는 여행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과 대만도 우선순위지만 일본은 물가가 비싸서 장기 체류가 부담스럽고 대만은 아직 빗장이 풀리지 않아서 패스. 호주와 뉴질랜드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고 땅 덩어리가 너무 커서 어느 한 곳 목적지를 장하기가 어렵다. 물론 체류비도 상당. 그렇기에 발리밖에 없다. 발리 머물면 호주나 뉴질랜드를 가볍게 다녀올 수도 있고 여차하면 주변국 예를 들면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까지 비자 연장을 핑계로 호핑투어를 만끽할 수 도 있다.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중간쯤, 어디든 갈 수 있고 항공편도 다양하니 옵션이 많다. 장기 체류도 걱정 없다. 체류 비용도 저렴하고 무엇보다 서핑도 할 수 있으니.
2022.04.09 -
재발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여행작가라는 타이틀은 잠시 내려놓게 되었다. 이제는 직장인이 되어 열심히 뺑이치고 있다. 휴일과 월급날을 기다리면서. 지난 10여년간 단절되었던 사회생활 경력을 다시 이어보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나이 많은 신입은 어디에서나 반가운 대상이 아니다. 누군들 이런 상황이 좋기만 하겠냐. 프리랜서 여행작가라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삶이 정규직 직장인이 되어 여러모로 안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국민연금도 되살아 나고 건강보험료도 오르고 연말정산도 해야 한다. 무작정 반가운 것은 아니다. 이제 겨우 회복된 일상. 그런데 자꾸만 떠나고 싶어지는 이유는 뭘까? 격리 면제, 출입국 규정, 항공노선과 관련된 각종 뉴스를 볼 때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과연 이곳인지 궁금해진다. 또다시 불안한 상..
2022.03.22 -
봄
하루에 만 보를 넘어 2만 보 아니 3만 보 가까이 걷고 있다. 매일 밤 근육통에 시달리고 이곳저곳 성한 곳이 없다. 언제부턴가 진통제, 파스를 달고 살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고 있는 요즘이다. 날씨도 추워 몸은 자꾸만 움츠려 들기만 한다. 빨리 봄이 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기만 하다. 항상 추울 것 만 같은 알래스카에도 봄은 찾아온다. 짧지만 봄이 찾아오면 하루 해가 길어지고 길가에는 꽃도 피어난다. 온도가 올라 따뜻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짧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알래스카의 봄을 떠올리면 지금의 힘겨움도 참을 수 있게 된다. 조금만 참자, 내 인생의 봄도 곧 찾아올 테니까.
2022.03.19 -
카페인
하루 세 번 마시는 커피,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하기 전에 마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열심히 노동을 하는 중간에 마시는 믹스. 퇴근 후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주는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 헤이질럿 라떼. 가끔은 바닐라, 돌체, 카페 라떼...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나만의 루틴처럼 반복된다. 하루 세 번의 카페인의 힘으로 그나마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 세 번, 밥을 먹지 않아도 커피는 마시는 요즘.
2022.03.04 -
감포 Gampo
good engouh 잔잔할 것만 같던 바다, 평온할 것만 같던 바다가 조금씩 울렁울렁거리더니 이내 작지만 괜찮은 파도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달리던 차를 멈추고 연신 카메라 서터를 누르며 사진과 영상을 남겼다. 마치 아주 오래전, 파도를 찾아 발리 전역을 헤매던 그 시절처럼... 아침 기온이 연일 영하 7~10도를 오가던 2월의 어느 날, 다른 곳에 비하면 온도가 높았던 경주지만 그럼에도 살깃을 여미는 바람이 꽤나 차가웠다. 바닷가는 텅 비어 있었고 간혹 도로를 지나는 현지인들만 눈에 띌 뿐, 외지인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이토록 아름답고 매력적인 바다를 나 혼자서만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진정한 블루에너지를 느끼게 된 시간. 2..
2022.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