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9. 15:24ㆍDESTINATION/Vietnam
미국 여행전문잡지 콘데나스트트래블러(Condé Nast Traveler)는 '2024년 아시아 최고의 10대 섬(The best islands in Asia)’ 부문에서 베트남 푸꾸옥은 인도네시아 발리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아름다운 섬으로 선정했다. 발리와 베트남 가이드 북을 쓴 저자의 입장에서 비교해 보았을 때 어쩌면 그럴수도 있겠다싶다.
About Phuquoc by Kim Nak Hyun
Published on 19th October 2024
푸꾸옥으로 출발하기 하루 전날 숙소를 예약했다. 혹시 몰라 공항 픽업을 요청해 두었다. 대부분 정해진 호텔이나 리조트 차량을 타고 사라질 것이고 남은 몇몇은 그랩을 탈 수도 있다. 나처럼 숙소에 픽업을 요청한 사람도 있겠지. 입국장으로 나오니 반가운 한국 여행사들과 마중 나온 현지인들이 속속 눈에 들어온다. 다낭, 냐짱 등 베트남 전역을 꽉 잡고 있는 한국 여행사들이 이제는 푸꾸옥을 잡아먹을 기세다.
나 같은 자유여행자들은 최대한 빅 그룹을 피해야만 한다. 최대한 동선이 겹치지 않는 곳으로 다녀야 한다. 하지만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이들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첫날 숙소가 자리한 중부 즈엉동, 다행히 호텔 픽업 차량을 타고 빠르게 도착했다. 짐을 풀고 맥주 한 캔 사서 입성을 자축하며 시원하게 마시고 잠이 들었다.
지금이야 추억으로 담아둘 수 있지만, 아주 오래전 나는 베트남 중부 무이네에서 꽤 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사이공에서 늦은 밤 슬리핑 버스를 타고 무이네에 도착해 해변 앞 리조트에 머물게 되었다. 당시 나는 바다와 리조트가 너무 가까운 것에 놀랐고 긴 백사장의 해변을 찾아가기가 생각보다 어려운 베트남만의 해변 위치를 알게 되었다.
푸꾸옥에서도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구글 맵에서 보여주는 해변까지는 도보 3분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해변을 가려면 리조트를 통과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여기서 고민을 하게 된다. 투숙객이 아니지만 들어가서 해변으로 가는 방법, 아니면 다른 길을 찾는 방법.
현지인들에게는 분명 그들만이 이용하는 길이 있을 테다. 내가 머물고 있는 호텔 리셉션에 물었다. 알고서도 알려주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 것인지 바다로 가는 방향만 제시할 뿐 마땅한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일단 해변과 연결되는 리조트로 들어가서 로비의 직원을 찾았다.
엄밀히 내가 찾던 해변은 리조트 프라이빗 비치였다. 해변 앞을 지키고 있는 직원도 있다. 리조트 직원은 앵무새처럼 당연한 말 만 되풀이 중이다. 뭐... 멋진 해변을 만끽하려면 여기서 머물면 된다는 그런 내용이다. 일단 배도 고프고 온도가 슬슬 올라가는 덕분에 시원한 커피 한잔을 하기로 하고 리조트 내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시원한 박시유 한잔 마시고 리조트를 한 바퀴 돌며 산책, 사람도 없고 비치 프런트 타입으로 해변도 깨끗하게 관리되고 좋다. 이곳은 푸꾸옥 서해안 대표적인 해변, 롱 비치(Long Beach)다.
첫 숙소에서 체크 아웃을 하던 날, 나는 캐리어와 백 팩 하나를 메고 이곳으로 체크 인 했다. 다행히 로비의 직원들은 아는 척을 해주었고 그렇게 며칠, 해변에만 쳐 박혀 먹고 놀고 진한 박시유 미친 듯이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비치는 롱 비치였다.
여행을 왔지만 해야 할 일도 있고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틈틈이 푸꾸옥의 바다와 해변을 만끽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미션이다. 우기 끝자락이라 하루종일 비가 내리다가 맑다가를 반복한다. 불안정한 날씨 때문에 일정을 수정해 중부, 북부, 남부, 동부 이런 식으로 잡았다. 결론적으로 북부 지역에 머물 때는 비가 자주 내렸고 남부와 동부로 내려온 시기에는 다행히 날이 맑았다.
롱 비치에 머물면서 그랩을 타고 동부 해안, 푸꾸옥에서 가장 유명한 사오 비치로 향했다. 명성보다는 소박하지만 그래도 느낌은 좋다. 물론 본격적인 성수기가 아닌 탓도 있다. 해변도 정비 중이다. 비스듬히 자란 야자수, 요즘엔 동남아 해변에서 제대로 된 야자수 만나기가 쉽지 않다. 자르고 그 자리에 카페나 펍, 상업 시설을 채우기 때문인데. 사오 비치의 야자수는 상대적으로 굵고 크다. 동남아 분위기가 살짝 난다.
다른 해변과는 달리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을 만큼 백사장은 넓고 바다도 잔잔하다. 제트 스키나 파워 보트에 매달려 하늘을 나는 페러세일링도 자주 목격된다. 딱 그만큼이다. 아무래도 머무는 숙소 앞 해변이 아니라서 숨을 공간이 별로 없다. 선베드와 해변 앞 레스토랑과 카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하일랜드 커피 매장이 있어서 커피 한잔 마시기는 좋다. 에어컨이 나오면 좋은데 그냥 창문만 열려있어 조금 아쉬웠다.
노란색 깃발이 꽂혔다. 바닷속으로 들어가도 된다는 의미다. 매일매일 날씨에 따라 깃발 색이 달라지지만, 보통은 노란색이다. 리조트 앞 해변은 다른 용어로 프라이빗 해변은 다른 해변과는 달리 관리가 잘 되어 있다. 리조트가 관리하는 해변의 장점은 언제든 시원한 에어컨이 틀어진 방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리조트는 수영장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바다 쪽 해변을 즐기는 사람으로 나뉜다. 푸꾸옥은 수심이 완만하고 경사가 급하지 않아 비교적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바다다.
다른 바다와 달리 냄새가 나지도 않는다. 간혹 낚싯배가 지날 때면 약간의 냄새가 나긴 하지만 그 외에는 깨끗한 바다 풍경을 마주 할 수 있다. 모래사장의 모래는 곱다. 리조트 투숙객들만 독점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내가 이 리조트에 돈을 지불하고 떠나기 전까지는 나를 위해 뭐든 해줄 준비가 된 곳이라는 뜻이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을 걷기도 하고, 선베드에 누워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낮 잠에 빠지기도 한다.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런 날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어떤 방법이든, 자신들만의 방법과 방식으로 푸꾸옥 섬의 바다를, 해변들을 즐기면 된다.
사람의 나이었다면 벌써 생을 마감했을 오래된 구형 아이폰, 보조 배터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지만 이별이 그리 쉽지가 않다. 그리고 언제든 나를 따라다니는 작은 포터블 스피커, 영혼의 단짝처럼 두 녀석이 있으면 언제든 빠르게 행복 모드가 된다. 오래된 플레이리스트를 바꿔줄 최신곡만 없을 뿐.
바다의 주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아름다운 바다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푸꾸옥 사람들이 아니다. 정작 이 동네 혹은 범위를 넓혀 푸꾸옥 사람들은 경비복을 입고, 수상안전요원복을 입고 있다. 수영복을 입고 아름다운 껨 비치를 누리는 사람들은 죄다 나 같은 외부인이다.
물론 어딜 가던 또 다른 주인은 있기 마련. 바닷가의 개들은 왠지 모를 포스가 있다. 낮에는 야자수나 건물 그늘 밑에서 쉬는 것이 전부지만, 가끔씩은 이렇게 당당하게 순찰을 돌기도 한다.
안방 비치를 호령하던 더 데크도 푸꾸옥에 있다. 물론 냐짱 비치의 세일링 클럽도 푸꾸옥에서 성업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호찌민, 다낭, 냐짱 할 것 없이 한국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돈을 버는 가게들도 하루가 멀다고 푸꾸옥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 푸꾸옥 빈버스는 큼직한 한국어 맵핑 광고가 붙어있고 그 안에는 한국인들이 가득 타고 있다. 가끔은 이곳이 제2의 경기도 다낭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찔하다.
푸꾸옥 섬에서 남쪽에는 안토이 군도가 형성되어 있다. 섬 하나하나, 자본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개발이 진행 중이다. 섬들을 구경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간단히 아일랜드 호핑투어, 스노클링이 포함되면 더 좋다. 물론 다이빙도 가능하지만 그냥 가볍게 섬을 보고 싶어 투어를 신청했다.
첫 번째 포인트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난 뒤부터는 급격하게 사기가 떨어졌다. 기대한 것보다 시야가 탁하고 열대어도 많지 않다. 하지만 날씨는 맑고 바다는 청정하고 바람은 시원하다. 이럴 땐 사람들과 노는 것이 제일 재밌다. 한 무리의 여행자들이 물 안으로 들어간 시간, 현지인들을 간단히 밥을 먹기도 하고 몰래 볼일도 본다.
조기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능숙하게 장비를 착용하고 바다로 겁 없이 뛰어드는 녀석들. 녀석들과 한 팀이 되면 피곤하다. 지치지 않는 체력 때문에 투어는 시간이 모자라다. 물론 베트남 현지 여행사는 동, 서양 여행자들의 특성을 잘 파악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한 팀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녀석들 때문에 또 다른 포인트에 늦게 도착했다. 푸꾸옥이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부터 존스 투어는 존재했고 여전히 다양한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언젠가 저 간판 대신 한국어 간판이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물놀이 후에 즐기는 망고 한 접시. 비록 망고 철이 아니라서 푸꾸옥의 망고들은 대체적으로 맛이 없지만 이 외딴섬에서 어디서 공수를 했는지 푸꾸옥에서 가장 맛있는 망고를 먹었다. 비록 투어에 포함된 한 접시의 과일이지만 동남아시아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먹을 수 있을까? 한 접시 더 먹겠다고 하니, 인심 좋게 한 접시 내어준다. 그러고 보니, 푸꾸옥 사람들의 선한 눈빛과 인심은 내가 알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과는 다르다. 섬이라 그런가. 돈 독이 제대로 오른 육지의 베트남 사람과는 확연히 다르다.
멍청하게도 아이폰을 주머니에 넣고 스노클링을 했다. 시간으로 따져도 상당히 오랫동안 물속에 있었고 포인트도 여럿 옮겨 다녔다. 주머니 속에서 폰을 꺼내는 순간, 보트 위에 있던 보트 기사도 스노클링 현지 강사들도 깜짝 놀랐다. 표현하지 못했지만 나는 더 놀랐다. 안토이 군도의 섬. 섬이라 그런지 현지 유심으로도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다. 어렵사리 현지 섬에서 사용하는 와이파이가 있어 연결하고 가장 먼저, 물 빼내기를 시도했다. 아이폰의 눈물...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예상치 못한 아이폰의 눈물, 유심조차 Error. 마음을 비우고 포기하고 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다. 그랬다. 진정한 힐링은 안토이 군도의 작은 섬에서 찾아왔다. 아이폰이 먹통이 되자, 이상할 정도로 나의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체념하니 비로소 안정이 찾아온 셈이다.
여행 내내 나를 따라다녔던 일과 걱정들. 고급 리조트의 화려함 속에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그것들이 푸꾸옥 여행의 끝자락. 정확히는 아이폰의 눈물 사건 이후 달라졌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을 연결하기 전까지 세상과 적당한 단절이 생기는 틈이 나에겐 진정한 휴식이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휴식을 극대화 시켜 준 곳은 팜 베이 리조트, 가격으로 치면 푸꾸옥 여행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였다. 망고, 야자수 나무 사이 자리한 소박한 수영장과 우사가 뒤에 있나 싶을 정도로 시골 냄새가 나는 평범한 숙소.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미친 닭. 마치 발리 남부 조용히 짱 박히기 좋은 나의 아지트를 닮은 이곳에서 나는 평온함을 느꼈다.
젖은 빨래를 널어 햇볕에 말리고 풀장에서 맥주를 마시며 폰까지 망가지고 나니, 자연스레 모든 걱정과 잡념을 내려놀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왔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리조트도 좋지만 잠시 멈출 수 있는 고요함이 있는 그런 곳이 진정한 휴식처가 아닐지.
망고 나무 그늘 아래 놓인 선베드에 누워 바라본 푸꾸옥의 하늘. 머릿속으로 짧지 않았던 푸꾸옥의 풍경들이 스쳐 지나간다. 사오비치의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을 걸으며, 진한 커피를 마셨고 껨 비치의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를 따라 자리한 비치클럽에서 어울리지 않는 터키식 메뉴를 주문해 배를 채웠다. 롱 비치 어느 리조트의 프라이빗 해변을 오롯이 즐기기 위해 계획에 없던 숙소까지 예약했고 아이폰과 함께 스노클링을 하고 외딴섬에서 와이파이 시그널을 찾아 헤매기도 했던 기억들까지.
푸른 바다와 황금빛 모래, 그리고 갈증을 날려버릴 맥주 한 잔. 여기에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몇몇 요소들이 더해져 행복했던 시간. 비록 간헐적으로 작동하는 비정상적인 아이폰을 가지고 귀국을 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나름 충분한 휴식의 시간을 보낸 것 같아 좋았던 푸꾸옥이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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