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티트립(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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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간 뒤
항공편이 지연, 결항이다. 태풍 ‘나크리(Nakri)’의 영향으로 베트남 중부 지역이 난리다. 태풍의 영향으로 날씨도 계속 흐리고 비가 내렸다. 무사히 공항에 도착, 비를 뚫고 숙소에 도착했다. 점점 강해지는 빗줄기에 식사도 그냥 근처에서 해결했다. 비행의 피곤함, 그간의 피로가 쌓여서였는지 그냥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뜬 이른 아침. 검은 먹구름 사이로 해가 보일 듯 말 듯. 얼마 후 언제 그랬냐는 듯, 태풍은 지나가고 해가 떴다. 태풍이 지나간 뒤라 그런지 하늘은 쾌청, 어제 입었던 긴팔을 집어던지고 아침부터 반팔에 선블럭을 바르고 바다로 나갈 준비다. – 베트남 나짱에서 2019년 11월 13일
2021.01.01 -
토요일 오후
이토록 한가하고 여유로운 토요일이 있었던가, 의도하지 않았던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를 맞이하니 뭐랄까. 적응이 되지 않는다. 항상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다가 오늘처럼 마땅히 할 것이 없으니 이상하다 못해 불안하다. 이 여유를 조금 더 길게 누리고 싶은데, 시간은 이상하리만큼 빨리 흘러간다. 요즘 들어 시간에 대한 갖가지 망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뭐하나 제대로 정리, 마무리는 하지 않고 일만 벌여가는 상황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딱히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의 시간은 조금씩 느리다. 세상의 시간에 맞추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내심 나와 잘 맞는 세상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토요일 오후 별 생각을 다하는구나. 2019년 11월..
2021.01.01 -
BEGINS
Bucket List 꿈과 목표가 늘어만 가던 다이어리 첫 장, 가장 윗줄엔 굵은 펜으로 선명하게 ‘surfing’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버킷 리스트가 하나씩 지워져 가는 순간에도 언제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 역시 ‘surfing’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어려운 버킷 리스트 중 가장 하나가 바로 ‘surfing’이었다. 가장 오랫동안 나만의 버킷 리스트에 머물고 있었던 서핑, 결국 지워버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고 난 그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공항 대합실, 삼삼오오 모여 담배 한 모금에 여행의 피로를 잠시 풀고 있었다.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아 꺼낸 빛바랜 잡지 한 권, 뜨거운 태양, 부서지는 파도를 타는 서퍼들의 모습에 꿈틀거리던 본능이 되살아나버린 것이다. 평상..
2020.12.31 -
선고즈다운
하루 단 한 번, 이렇게 해가 저물어 가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여행 중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아침 해가 떠올라 본격적인 열기를 분출하기 전까지 나는 최대한 많이 걷고 걸으려고 노력한다. 해가 중천에 뜨면 잠시 쉼터로 돌아와 해를 피하고 오후 무렵 저무는 해를 찾으러 다시 밖으로 기어 나온다. 여행 내내 숨바꼭질을 하듯 숨기와 찾기를 반복하며 하루를 보낸다. 엄청난 인파와 더위 속에서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었던 주말을 보내고 맞이한 월요일의 믈라카. 오늘만큼은 태양도 잠시 숨을 고르는지 아주 천천히 저물어 간다. - 9월의 월요일 믈라카에서 2019년 9월 2일
2020.12.30 -
사파리 노예
한동안 스마트폰 걱정 없이 살고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용량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늘어만 가는 사진과 동영상의 압박 속에서 매일 반복적으로 삭제를 시도. 하지만 이마저도 어느 순간 여의치가 않아졌다. 게다가 부주의로 인해 디스플레이 액정까지 여기저기 금이 가고 나니 더 이상 사용하기에 어려움이 생겼다. 새로운 폰으로 바꾸어야 하는 상황. 오매불망 눈팅만 하다가 드디어 찾아낸 아이폰. 하루 온종일 씨름을 하다가 결국 겟! 엄청난 용량에 당분간 걱정은 하지 않을 듯. 2019년 6월 29일
2020.12.30 -
161번 국도
아침부터 갑작스레 떠오른 더 다타이(The DATAI)의 기억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어떤 연관도 없이 뜬금없이 떠오른 것인데 이럴 때면 무척 난감하다. 결국 당시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사진을 찾았다. 그때는 따뜻한 남국의 열대 기운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드라이브를 즐기던 날이었다. 해외여행을 가서 렌터카 몰고 어디론가 다니는 것은 무척이나 낭만적이라고 생각되는데 복잡한 도심 속에선 쉽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몇몇 나라는 여행을 할 때마다 차를 빌려 다니게 된다. 말레이시아 ‘랑카위’, 일본 ‘오키나와’, 대만 ‘펑후’ 등이 대표적인 곳이다. 오늘은 말레이시아 랑카위를 여행하던 그때가 떠오른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랑카위 북서쪽에 위치한 더 다타이 리조트로 가던 그 길, 그리고 그곳에서..
2020.12.30